소치(小癡) 허유는 처음 이름은 허련(許鍊)이었으나, 후에 중국 남종 문인화의 대가 왕유(王維)의 이름을 따서 허유라고 개명하였다.
서화를 김정희에게 사사하고 벼슬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글·그림·글씨를 모두 잘하여 삼절(三絶)로 불렸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묵죽을 잘 그렸다. 글씨는 김정희의 글씨를 따라 화제에 흔히 추사체를 썼다. 김정희의 문기 있는 선으로 화면을 고도로 추상화시키는 철학적 표현 화풍과 고격의 필법을 이어받은 소치의 회화세계는 오늘날 남화를 남도 지방에 뿌리내리게 하고, 그 골격은 근대 한국 남화의 맥을 형성하게 되었다.
만년에는 고향인 진도로 돌아가 운림산방(雲林山房)을 마련하고 작품 제작에 몰두하였다.
그는 산수화 외에도 모란, 사군자, 연꽃, 괴석, 노송, 파초 등 다양한 소재를 능숙한 필치로 구사하였다. 그의 화풍은 아들인 미산(米山) 허형과 손자인 남농(南農) 허건(許建), 그리고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등으로 이어져 지금까지도 호남 화단의 중요한 맥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