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서화

찬란했던 근대 미술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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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작가

서홍순
서홍순
작가호 호산
작가명(한자) 湖山 徐弘淳
작가명(영문) Seo Hong-Soon
생몰년 1798 ~ 1876
작가설명 서홍순(徐弘淳 1798~1876)은 익산 웅포에서 출생하여 일찍 학문을 익혀 진사(進士)에 급제한 인물로 창암 이삼만의 서법을 전수하여 초서(草書)와 태서(苔書)에 능하여 호남의 명필로 추앙 받은 서예가였다.
그러나 그에 관한 자료는 많이 남아있지 않아 그의 행적은 구전으로만 전해지고 있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 서예사에서 그에 관한 유일한 기록인 근역서화징(오세장저)을 보면『그의 자(字)는 경삼(敬三)이요, 호는 호산(湖山)으로 진사(晋史) 또는 서진사(徐進士)라고도 했다.
본관은 대구로 영조때 이인좌의 난에 연루되어 신문을 받던 중 매를 맞고 죽은 서종하(徐宗廈 : 헌중 11년. 1670~1730)의 5대손으로 함열에서 살았다.
본래 창암 이삼만에게 글씨를 배워서 말년에 중국에 글씨를 가지고 팔려고 하다가 의주(義州)에 이르러 죽었다.
초서를 잘썼고 특히 태서(苔書 : 이끼처럼 가늘게 쓴글씨)로 이름이 났으나, 그 가늘기가 머리카락 같아서 언뜻 보면 태전(苔: 태지, 물이끼와 닥을 섞어서 만든 종이로 일명 측리지(側理紙)라 했다.)의 무늬로써 글자가 없는 것 같았으나 글자 획은 온전히 갖추어져 있었다.
호산이 평생 동안 글씨를 잘 써 몽당붓이 항아리에 가득 찼다고 한다.
그 아들의 호는 호운(湖雲)이니 그 가업을 이어받아서 또한 글씨를 잘 썼고 손자의 호는 우운(又雲)이니 난초를 잘 그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그의 작품은 약간의 서첩과 웅포의 덕양정 현판 여산의 모사찰 현판외에는 작품이 적어 아쉬움이 있으나 최근 그의 저서로 [호산심화]지상에 발표되어 한시에도 능한 서예가로 평가되고 있다.